[보성콕콕!] 모의장군 최대성의 위패가 모셔진 '충절사'
보성군 득량면 송곡리에 있는 충절사는
정유재란 때 순절한 조선시대의 무신 최대성과 그의 두 아들인 최언립, 최후립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조선시대의 사당입니다.
경내에는 충절사와 모의재, 기경관, 정려각, 정충문 등과 모의장군 최대성 장군의 동상과 삼세충절비가 세워져 있고
이곳에는 병참을 비롯한 화살촉 등 장군의 유품 50여 점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최대성(崔大晟, 1553~1597)은 보성군 겸백면 출신으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충무공 이순신의 막하로 들어가 한후장이 되어 남해의 여러 곳의 전쟁에 참전하여 승리를 거두는데 큰 공을 세운 무신입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난 뒤 '모의장군(募義將軍)으로 불리면서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특히 1598년(선조 31) 4월에 벌교포, 대포, 장암포, 영등포 등에서 왜적을 물리쳤으며,
6월에 왜군을 대파하여 오도치까지 추격하여 적장을 생포하였으나 유탄에 맞아 결국 전사하고 아들 최언립과 최후립도 함께 전사하였습니다.
내삼문 경앙문입니다.
충절사를 방문하는 이들을 가장 먼저 반겨주는 곳입니다.
경건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옷을 바르게 하고 입장하라는 안내문이 있으니 준비를 하시고 입장하시면 됩니다.
우측으로는 기경관이 있고 좌측으로 모의제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내삼문인 성인문을 지나면 모의장군 최대성과 두 아들의 위패가 모셔진 충절사에 갈 수 있습니다.
사당인 충절사입니다.
안에는 제를 올릴 수 있는 제구들이 있고 장군의 모습이 그려진 액자가 있습니다.
무술 6년 8일 그의 나이 45세로 생을 마감하였다고 하는데 액자 속 장군의 모습은 참 인자해 보입니다.
충절사에서 바라본 성인문의 안쪽 모습입니다.
정충문과 정려각입니다.
최대성 장군은 보성의 안치 전투에서 적을 추적하던 중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는데 그의 순절을 기리기 위해 이곳의 지명을 군머리(軍頭)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일제에 의해 그의 모든 유물이 소각되거나 파기되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자
장군과 두 아들의 충절을 기리려는 도민들의 노력으로 1992년 그가 최후로 전투를 치르다 전사한 곳에 충절사를 건립하였습니다.
보성에 오시면 아름다운 보성의 자연도 감상하시고
나라를 지키다 전사하신 장군이 모셔진 충절사에도 들르시어 그분들의 충절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시는 것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