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콕콕!]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곳.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로 시작하는 향수는
테너 박인수가 불러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노래인데요
이 노랫말은 시인 정지용의 '향수'에서 따온 것입니다.
정지용이 그리워하던 고향 충북 옥천에 정지용을 기리는 문학관이 있습니다.
정지용은 월북(납북) 작가로 오랫동안 그의 작품이 금서로 묶여 있었습니다.
휴전 이후, 한참 동안 아무리 뛰어난 문학성을 가진 작품이라도 월북작가의 작품이라면 읽을 수 없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1920~30년대 모더니스트 시인의 작품이 오랜 시간 사장되어 있던 것입니다.
그러나 1980년대 정지용의 신원 회복 운동이 펼쳐지고, 1988년 그의 작품들이 해금 조치되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의 작품 '유리창', '고향', '향수' 등이 교과서에 실려 많은 학생들이 배우고 있습니다.
잊혔던 시인이 근현대 문학사의 거두로 재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는 정지용이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향수의 구절처럼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문학관은 정지용의 생가 옆에 조성되어 있고, 이곳에서 시인의 작품세계를 직접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이 살아왔던 시대상에 비추어 시인의 삶이 정리되어 있고,
시인의 작품들을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습니다.
정지용은 1920년대에서부터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한 작가로
이미 사용되지 않은 고어나 방언을 시어로 선택하여 풍부한 작품세계를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세련된 시어 구사가 당시의 모더니즘 문학에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정지용의 작품이 해금 조치 되고 나서 그에 대한 많은 연구서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가 여전히 사랑받는 것 같이 그의 시와 소설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의 고향 옥천에서는 정지용 시인과 관련한 활발한 문화활동들이 기획되고 있습니다.
옥천의 문화축제의 이름은 '지용제'로 매년 5월에 열리고,
정지용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제정되어 있어 매년 시상식을 거행하고 있으며, 때때로 사진 공모전도 열린다고 합니다.
정지용 문학관에 방문한 사람들이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기념품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들어서자마자 시인 정지용의 모형이 있어 시인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도 있으니 추억을 남겨 보시길 바랍니다. ^^
정지용 문학관은 생가 옆에 조성되어 있고 작은 뜰에는 정지용의 동상이 서있습니다.
157cm의 단신인 정지용이 유난히 커 보이는 것은 그의 시 세계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방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정지용의 생가는 그 시대의 집들이 다 그렇듯 초가집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
생가터에 다른 집이 들어선 것을 시가 1997년에 매입하여 초가로 재조성 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의 생가 앞에는 '향수'의 시비가 방문객들을 맞이합니다.
지금은 향수의 내용과 같은 풍경을 생가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렵지만,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가에 앉아 정지용의 어릴 적 삶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곳 이 자리에서 어린 정지용이 뛰어놀았을테니까요. ^^
옥천이 낳은 시인 정지용은 한국 문학사에서 오랜 시간 묻혀 있다가 뒤늦게 빛을 발하게 된 작가입니다.
월북(혹은 납북) 이후의 그의 삶이 미스터리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작품이 우리에게 아름다운 빛을 주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의 근현대사의 아픔과 함께한 시인의 삶을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면, 문학관에 방문해 보시길 바랍니다.
시인의 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