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콕콕!] 천장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청량사'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에 위치한 '청량사'를 소개합니다.
청량사는 천장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비구니 도량이며, 예부터 4대 비구니 도량으로 유명한 돌꽃이 승방이 바로 이곳입니다.
원래 청량사와 돌꽃이 승방은 별개의 절이었으나, 1895년 일제 조선강점흉계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된 이후 황후의 능인 홍릉이 조성케되자
홍릉자리에 있던 청량사를 현재의 위치로 옮겼고, 때마침 돌꽃이 승방도 사세가 기울어 두절이 병합되었답니다.
청량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며, 신라말엽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지만,
창건주와 창건연대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고려 예종 12년인 1117년 예종이 거사 불교의 큰 인물인 이지현을 불러 이 절에 머무르도록 했다고 합니다.
이로 미루어볼 때, 고려 예종 이전에 이미 청량사가 창건되어 있었던 것을 추정해볼 수 있답니다.
<동국여지승람>과 <고려사절요>에는 이 절이 삼각산에 위치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의 홍릉 영휘원이 옛 절터 자리입니다.
청량사는 1897년 명성황후가 홍릉을 만들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으며, 일제강점기에는 한용운이 머물기도 하였습니다.
1980년 대웅전을 신축하는 등 불사를 진행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건물로는 대웅전과 극락전. 칠성각. 요사 등이 있습니다.
청량사는 한말에는 도성 사람들이 자주 몰려와 쉬던 휴양지였고, 일제 치하로 나라가 어려웠을 때는 많은 애국지사, 고승들의 발길이 잦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과 불교운동에 앞장선 만해 한용운 선생이 한때 청량사에 머물렀다고 하며,
1939년 7월 12일에 한용운 선생의 회갑연이 조촐하게 열리기도 했답니다.
같은 시기 불교계 학자인 박한영도 이 절에서 기거했으며, 대방에 걸린 청량사 현판 글씨는 박한영의 글씨로 전해집니다.
청량사는 회한의 역사 속에서 위법망구의 불심으로 도량을 가꾸어온 비구니대중스님들을 보듬어 안고
오늘도 대자대비의 원행으로 도심속에 회향하고 있습니다.
청량사는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 3번출구에서 나가 몇백미터 올라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데요,
청량리역명이 바로 이 청량사때문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동대문 청량사는 법당문을 항상 열어놓지 않고, 예불 시간에만 문을 열어놓고 있으니 참고하셔서 방문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