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콕콕!] 잊혀지지 않은 '잊은터', 안성 죽산성지
한국 천주교의 역사는 박해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어, 순교가 있었던 지역이 성지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 성지는 전국에 걸쳐 111곳이 있는데 그 중 안성에는 미리내 성지와 더불어 죽산성지가 있습니다.
죽산성지는 병인박해(1886-1873) 때, 심문과 고문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처형되었던 장소입니다.
기록에에 이름이 남겨진 순교자가 25명이라고 하나 기록되지 않은 무명의 사람들이 더 있으리라 추측된다고 합니다.
성지 입구에는 성지임을 알리는 표지석과 자애로운 모습의 예수상이
성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반겨줍니다.
지금은 너무도 평화로운 곳이라 130여년전의 이곳의 아픔이 바로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형상화한 청동상에서
시대도 장소도 다른 이 곳에서 자신의 믿음을 지키다 다른 방식으로 죽어간
순교자들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청동상 근처에는 작은 정자가 있어 사람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게 되어 있고
돌담길을 따라 길이 이어져 있습니다.
종교적 자유를 얻은 지금 잘 단장된 길을 걸으면
과거의 아비규환의 고문터의 모습이 쉽게 상상되지 않고 평화로운 자연에 젖어들게 됩니다.
담장 안으로 들어가면 성지 내부의 모습이 펼쳐지는데요.
담장 밖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아픔보다는
곱게 핀 능소화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입니다.
봄에는 꽃이 만발하고 가을에는 단풍과 낙엽이 멋지게 어우러진다고 합니다.
순교자 묘역이 이 곳이 많은 이들이 스러져간 곳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작은 고을이었던 죽산은 고려시대 삼남지역으로 내려가는 주요 교통요지 였습니다.
임진왜란 때 도호부로 승격되고, 죽산 도호부사가 토포사와 지방군대의 수장을 겸했기 때문에
병인박해 당시 막강한 군사력으로 천주교인들이 체포되었다고 하네요.
순교자의 의연함 죽음을 기리는 현양탑이 높이 솟아 눈길을 끄는데요.
현양탑 옆에는 25기의 묘지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죽산성지로 개발된 이 곳은 당시 신자들의 처형지로 이 곳의 원래 이름은 이진터였다고 합니다.
고려 때 몽고군이 쳐들어와 죽주산성을 공략하기 위해 진을 쳤던 자리라고 하는데요.
오랑캐가 진을 친 곳이라고 하여 '이진(夷陳)'터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병인박해 이 후 '거기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 하여 잊은터 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하네요.
모든 천주교 성지에 있는 십자가의 길은 예수의 순교당시를 재현한 길입니다.
내가 중심이 되는 나를 버리고 그리스도 중심의 더 큰 나를 채우는 순교자의 영성을
체험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죽산성지는 25명의 순교자 묘역을 중심으로
만남의 장, 성역문, 장미의 길과 십자가의 길, 소성당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순교자의 역사를 알기위해 계절이 중요하지 않으나
봄에는 장미터널과 야외정원에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다고 하니 그즈음 방문하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두들겨 맞으면서 자신의 신념을 지켰던 곳,
그 곳에 가면 잊혀진 사람이 된다하여 잊은터라 불려진 곳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는 곳이 되었습니다.
종교를 떠나 역사속에서 삶의 본질을 찾기 위해 성지를 방문하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