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콕콕!] 불굴의 애국지사 박열의사기념관
독립운동가 박열의사의 일대기를 만날 수 있는 박열의사기념관입니다.
아나키스트로서의 길을 걸어온 박열의사와 부인인 가네코 후미코의 삶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더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곳입니다.
박열의 동반자인 가네코 후미코에 대해 알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박열의사를 만나기 전 생활과 23세의 나이로 박열의사와 함께 옥살이 중 자살했다고 발표를 했지만
의문의 죽임을 당하기까지의 내용이 담긴 다양한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920년대 일본에서 활동했던 박열의사는 권력과 지배와 억업이 없는 평등사회를 지향하는
무정부주의자인 아나키스트로서의 행보를 걸었기 때문에
일본 책자가 많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전시실은 민족주의자였다가 무정부주의자로 변화되는 배경과 함께
일본에서 항일투쟁을 벌일 때 만나서 인연을 맺은
가네코 후미코와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일왕 폭살 계획으로 검거된 후에 재판정에서 투쟁을 하는 모습이 재연되어 있어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사형 판결 후 "재판장 수고했네, 내 육체야 자네들 맘대로 죽이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라고 당당히 말했던 박열의사의 우직함을 느낄 수 있는 장소입니다.
일제 강점기 시대의 옥중생활과 법정의 모습을 자세히 알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어
애국선열들의 생활과 탄압 당했던 흔적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당시의 답답함을 느낄 수 있고,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곳입니다.
재판 당시, 박열의사는 조선시대의 관복과 신랑이 혼례 때 사용하던 사모관대의 관복 차림을,
부인은 치마저고리를 입고 출석하였는데요,
당시를 기억할 수 있는 의상이 함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재판장은 박열을 <그편>이라 칭하고 박열 또한 재판장을 <그대>라고 칭하는데
일본 재판 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고 합니다.
대역사범으로 무기형으로 23년간 옥고를 치르고 1945년 석방되었다고 합니다.
석방 후에는 재일본 대한민국 거류민단의 전신인 신조선 건설 동맹을 결성하고
재단법인 박열 장학회를 결성하여 인재들을 일본으로 보내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고 합니다.
이후 73세 나이로 타계하고,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고 합니다.
박열의사가 태어난 생가와 함께 박열의사의 일본인 부인인 가네코 후미코의 묘가 있습니다.
일본을 움직인 10대 여장부에 꼽히는 가네코 후미코를 추모하기 위해
매년 500명 이상의 많은 일본인들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독립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박열의사의 애국정신을 떠올리며 방문해 보세요.
역사 공부와 함께 애국심을 느낄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될 것입니다.